수련체험기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입니다.

바른 몸에 바른 마음이 담기는 것입니다.

- 도운선사 -

몸 건강

최상의 건강법 국선도, 그 빛을 함께 ... 2014.03.24

본문

작성자 : 연맹사무처

최상의 건강법 국선도, 그 빛을 함께 ․ ․ ․

                           경기도 평택 합정 수련원  박 주 태

인간은 자연스럽게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살다가 고통없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현대산업 발전의 폐단으로 금수강산이 멍들어 가고 대기의 오염은 한계를 넘어 사람들이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른 것 같습니다.

현대의학이 발전하여 수많은 병들의 치료약을 개발하여 치료해도 난치의 불치병들은 의학 문명과 경주 하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험난한 세상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으니,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1956년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속에서 성장하며 농촌 생활을 해왔습니다.
어린시절 모내기를 하다 대나무에 찔러 발바닥에서 발등으로 관통하여 힘줄 기능을 상실하여 엄지발가락을 뒤로 넘기기가 힘들었고, 6세 아동시절에는 모친사망으로 누님 슬하에서 자랐으며, 성격이 매우 내성적이고 자신감이 결여 되었으며, 다혈질적이었습니다.

또한, 시골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울산시내 학성고로 진학 했으나, 마음의 여유가 없어 학교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며,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교 진로를 사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 사회에 이바지하며 몇 백억 되는 전투기를 조
종하는 전투조종사가 되어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 보고 싶었습니다.

꿈을 안고 자신의 건강관리와 외국어, 전문지식 등을 익히고 사관학교 생도의 규율을 위반하지 않으려고 항상 틀에 맞춰 생할하고 긴장되고 빈틈없는 생도생활을 하였습니다.

1979년 꿈에 그리던 초등비행에 입과 초등훈련기(T-41)를 조종 했으며, 초등비행 수료 직전 그렇게 좋던 시력이 갑자기 나빠졌고, 이륙과 훈련에는 지장이 없는데, 착륙시 목측이 높아(항력이 커짐) 어려움이 있었지만, 단독비행을 꼭 하고 싶은 욕구로 단독비행 중 착륙 시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정말 희망했고 동경했던 전투 조종사의 꿈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생에 또 한번의 시련이 찾아와 힘든 20대의 시절을 보내야했습니다.


소위로 임관하여 인사행정 병과를 받아 군 생활을 시작 하였습니다.
인사병과는 업무에 대한 보람은 있으나 매일 업무 과중과 사기, 복지, 참모업무 등으로 일과 후, 주말에도 계속되는 업무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경남 사천 공군부대에서 결혼도 하고 10년 이상 현역복무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공군본부로 차출, 공본 인사참모부에서 10년 근무 하면서 정책업무를 맡아 매일 매일 저녁 야근과 조기 출근을 하면서, 아내의 직장생활로 주말부부 생활로 인하여 5년 이상 혼자 생활하면서 식사를 제때 못하고 술자리도 많아 몸은 점점 쇠약해 갔습니다.

또한 그 시절 진급시기까지 겹쳐 뒷골과 목, 어깨까지 당기고 아파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고, 또한 진급 시기라 아프다는 말을 못하고 꾹 참으며 홀로 밤새 고통과 시련으로 하루하루 생활해 갔습니다.

대전에서 주말마다 가족이 있는 진주를 토요일 오후 2시경 출발하여
집에 갔다가 일요일 오후6시 다시 부대로 복귀하면 밤11시가 되었고, 지금은 대진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차량 편도 5시간 소요로 정말 피곤했습니다.

다행히 진급이 되었으나 국방부, 합동참모
본부 등 혼자 사는 5년 근무 생활이 또다시 시작되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과음과 체력부족으로 몸은 차츰 쇠약해져가고, 탈모 스트레스 등 거의 매일 잠을 설쳤습니다.

다시 공군본부로 차출되어 4년 근무 중 고통이 심해 상급자와
상담하여 업무가 비교적 부담이 적은 예하부대로 전속 상신을 했습니다. 청주 공군부대 인사참모로 발령받아 근무 시 가슴이 답답하며, 몸에 이상한 신호가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대 인근 청주 00병원에서 받은 검진 결과 부정맥이 심하여 수술도
고려해야 한다고 하면서 서울 연세대학병원을 추천 하였습니다. 연세대 병원(000교수) 진단 결과, 부정맥이 심하지만 조종사가 아니니 수술은 하지 말고 조심하면서 수시로 통원 치료를 권장했습니다.

보통 사람보다 심장마비가 올 확률이 20배 된다고 하면서 조심하도록 당부 했었으나 주위 부대원들에게 알려질 경우 전역까지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 노심초사 했습니다.

그러나 혼자 생활 하면서 사무실 부서장으로써 수시로 격려 회식을 해 줘야하고 운동도 함께하며 끝나면 저녁 식사 겸 술자리까지 연속되었음에도 그래도 아픈 내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1999년 7월 오후 1시 6분 Tee Up을 했는데 오전에 내린 소나기로 바닥의 수증기와 습기가 올라와 호홉이 곤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끝까지 하려고 노력 했는데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7홀에서 갑자기 앞이 캄캄해지고 정신이 몽롱해져 정신을 잃었고 나중 깨어나니 부대병원 병실에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목과 어깨가 아파 특히 잠잘 때 더욱 심해 진통제(펜잘)를 수시로 복용하며 살았으면 항상 피로와 짜증으로 정상 업무가 어려워 다시 충남대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똑 같은 진단이 나와 이젠 진급도 중요 하지만 살고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많은 고민 끝에 운동을 하기로 결심 하였습니다.

2007년 말 그날도 밤잠을 설치고 목과 어깨가 너무 아파 한의원에서 침이라도 맞을까 하고 대전 관저동 한의원을 찾아 갔는데 내 삶에 최고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한의원 원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수지침은 맞을 때나 통증이 해소되지 근본 치료는 안 된다고 하면서 운동으로 건강을 회복하면 좋겠다고 꼭 맞는 운동이 ‘국선도’라고 하면서 적극 추천을 해 주었고 또한 관저 국선도 수련장까지 소개 해 주셨습니다.

내가 처음 국선도를 소개 받은 곳도 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전 관저수련원 이었고 문을 열고 첫 걸음을 내닫는 순간 온화한 기운이 편안하게 나를 감싸는 듯했고 김영건원장님과 상담하면서 나는 그간 내가 겪은 투병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수련은 꾸준하게 하면 건강은 분명히 되찾을 수 있는데 마음을 급하게 먹으면 안 된다” 면서 “산하의 처마 밑 낙수가 바위를 뚫는다.”는 진리와 “겸허한 마음으로 수련에 열중 하십시오.” 라는 김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즉석에서 신상기록카드 작성과 회원 등록을 마쳤습니다.

이제 도복을 입고 하얀띠를 매고 수련의 예의와 준비운동 동작을 설명 듣고 서서 허리 굽히기를 하는데 손끝도 겨우 바닥까지 내려갔고 팔 흔드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나 매일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일과의 최우선적 순위로 원장님의 지도를 받고 미리 가서 몸 푸는데 역점을 두고 두드리기 벌리기 구부리기 누르고 뒹굴기 등을 하다 보면 도복은 땀으로 흠뻑 젖기 일쑤였습니다. 수련하는 동안은 몸이 성한 곳이 없이 아픈데도 수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는 기분이 상쾌하며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고 자신감이 생기는 듯 하였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동작을 하면서 호홉, 동작, 의념집중을 하지만 매번 집중이 되지 않아 정말 힘들었고 동작이 되면 의념이 안 되고 의념이 되면 동작과 호흡이 잘 안되고 해서 많은 시련을 거쳤으며 지속적인 노력이 성공을 이끈다고 생각하고 원장님의 친절한 지도와 긍정적인 생각으로 수련 하였기에 내 몸에 변화가 오고 있었고 또한 하단전에 열이 생기면서 왠지 힘이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든 꽉 쥐면 터질 듯한 자신감이 생기고 정신은 밝은 것 같은데 마음은 떠 있는 듯한 묘한 상태가 한 동안 유지 되면서 어깨와 목 등의 통증도 해소 되고 몸 전체가 호전 되어 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건곤단법을 거쳐 원기에 승단 할 때 크게 와 닿는 느낌이었습니다.
“자기 몸을 위하여 정성과 노력이 합일 되면 분명히 건강한 몸으로 귀착 된다.”는 원장님의 첫 대화 때의 말씀입니다. 나는 다시 한번 확신을 얻었고 또한 수련에 열중했습니다. 이제 뻣뻣했던 무릎이 좌측우측으로 결가부좌가 잘 되고 모든 동작을 거의 다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수련은 외적인 수련 몸 만드는 데에 너무 집중을 하다 보니 호홉에 힘이 실려 가슴이 답답하면서 의념 집중이 잘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두 번째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30년 이상의 군 생활을 정리하고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고 계속 수련을 해야 하는데 집사람 직장마저 평택으로 이동하게 되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국선도와 나는 단절 돼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굳은 생각으로 평택으로 이사 가서도 계속 수련하기로 결심하고 이사 한 다음날 평택수련원을 찾아 이상주원장님께 그간 있었던 애기를 하고 바로 등록,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이전 호홉은 단계적으로 지식을 틀에 맞추어 가졌지만 이제 내 몸 신체조건에 맞게 무리없이 호흡하고 숨을 억지로 참지 않고 의식적인 호홉으로 생기는 복압이 없이 천천히 유유하게 아주 자연스럽게 호홉 하면서 운기하며 수련했습니다.

이젠 고통스럽게 살았던 과거는 모두 다 잊고 잠을 잘 때도 전혀 고통이 없고
목 디스크도 좋아졌고, 마음도 한층 안정 되었으며, 또한 놀라운 사실은 전년도 건강검진 결과 부정맥도 없이 아주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특히 얼굴 피부가 깨끗하고 윤택이 나서 부러움을 사고, 피로도 별로 없이 항상 매사에 긍정적이고 안정을 취하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이 변했다는 애기를 듣고 있으며, 국선도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문의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병고에 시달리던 내 몸을 통해 국선도를 증명하게 된 것 아닌가요? 이제 내가 그 빛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하겠습니다.

이제 국선도 지도자의 길이 내게 열린 것입니다. 내게 처음 수련을 지도해주시고 도종사님의 존재를 일깨워 준 김영건 원장님과 이상주 원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국선도를 만난 것이 일생의 큰 행운이라면 두 분의 지도자는 나침판 역할을 한 안내자였다는 것은 더할 나위없는 행복이라 생각됩니다.

국선도 선배 지도자님 모든 분들께, 이 서면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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