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내려놓으며 2006.09.21
본문
작성자 : 강영숙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전환기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떤 계기로 되었는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이러하다. 우리 큰아이 여섯 살 되던 해. 일반 제도권내의 학교 교육의 문제점과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교육. 우리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육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내 삶의 문제로 연결되었다. 그러한 고민 속에서 마침내 나의 시선은 내 내면으로 향하게 되었고 그 때 마침 국선도를 접하게 되었다. 국선도라는 말조차 모르던 내게 새로운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 국선도라는 기수련을 한다고 하길래 무작정 따라갔던 것이다. 그렇게 기수련이 뭔지, 국선도는 뭔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마음을 내리고 명상을 할 수 있다고 하길래 따라가 입문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내 삶의 전환점을 지나친 내게 그 길로 가게끔 하는 좋은 동반자가 되어 있다.
처음 한 달간은 정신이 없었다. 준비, 정리 운동은 선배회원들 하는 것 보고 따라하기 바빴고 순서는 몰라도 따라할 정도의 시간 여유가 생기니 어찌나 몸이 굳었는지 마음대로 동작이 되지 않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사범님은 무리하지 말고 자신의 몸에 맞게끔 하라고 하셨지만 잘하는 옆 사람 보면서 하니 욕심이라는 것이 생겨 손끝이 아픈 적도 있었고 허벅지 안쪽 인대가 아픈 적도 있었다. 그렇게 3개월 정도가 지나니 어느 정도 몸이 풀어짐을 느꼈다. 하고나면 힘이 들었었는데 그런 증상이 없어지고 몸이 가뿐해 지는 것 같았다.
호흡은 맘대로 되질 않았다. 누워하다 앉아서, 서서 하면 잘 되지 않았고, 행공동작을 취하면 더 안 되었다. 그러나 수련시간만큼은 늘 떠서 둥둥거리는 내 마음도 수련을 할수록 어느 정도 가라앉아 편안하고 느긋해졌으며 오로지 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단전자리에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고 움츠린 가슴이 서서히 펴짐을 느꼈다. 또 내 자신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지고 이전보다 더 존중하는 마음이 들었다.
중기 전편 수련일이 100일 가까워서는 몸도 많이 풀어졌는지 어느 정도 행공 동작도 잡히고 행공이 재미있었다. 그 즈음 입단행공1식의 재미도 조금 느꼈다. 하다보니 동작에 맞게 호흡이 되어지고 찌릿찌릿 기운이 조금씩 느껴졌다. 기신법의 동작들은 길을 익혔고 무게 중심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두세 번 명문자리의 뜨거움도 느꼈다. 어느 땐 그 뜨거움이 내가 숨을 들이마실 땐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가 내쉴 땐 다시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잘못 느낀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땐 욕심이 별로 없었다. 매일 수련을 못하고 빠지는 날도 많았지만 그저 그 시간만큼이라도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하고 편안히 나를 놓아주려고 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중기 후편의 수련은 한마디로 힘들었다. 행공 동작 자체도 어려웠고 잡생각도 많이 났고 무엇보다 욕심도 생겼고... 또 나의 주변 생활도 그리 안정적이지 못 했다. 걱정거리, 고민거리가 많아지고 깊어갈수록 그것을 떨쳐 버리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져갔고 그럴수록 더 마음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더 붕 떠서 이런 저런 생각과 고민에 끌려 다녔다. 그러던 중 이사를 가게 되었고 수련원도 옮기게 되었다. 이사한 곳에서의 새로운 적응과 새로운 수련원의 적응으로 또 그렇게 어영부영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마음은 잡을 수가 없었다. 나의 신경은 몸보다는 마음으로 쏠렸다. 특별히 몸이 많이 안 좋았던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그 때의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나를 다스리고 싶은 마음이 커 몸의 건강보다는 마음을 내리고 나를 비우는 마음수련이 간절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마음 수련에 대한 나의 욕심은 오히려 수련에 더 방해가 되었다. 사범님은 말씀하셨다. 몸은 욕심의 근본이라 몸 수련을 먼저 하고 - 물론 이 과정에서 마음 수련도 자연스럽게 같이 된다 하셨다 - 마음 수련을 해야 한다고. 100%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사범님을 믿고 따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나에게 좋은 기회가 왔다.
“ 공부하고 오시지요 ”
사범님이 말씀하셨다. 내키지 않아도 때가 되었으니 건곤으로 승단하고 생활강사 교육을 다녀오라는 얘기셨다. 난 그냥 사범님의 그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여 중기후편 수련의 아쉬움을 남긴 채 승단을 했고 교육에 참여했다. 그것이 생활강사라는 지도자 과정 교육인지도 잘 모르고 국선도가 뭔지, 수련에 도움이 되겠거니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교육원 구석구석을 채우던 교육생들의 그 열기와 에너지, 지금도 생생하다. 교육을 받는 2박3일 동안 나는 온몸으로 국선도의 기운을 느꼈
처음 한 달간은 정신이 없었다. 준비, 정리 운동은 선배회원들 하는 것 보고 따라하기 바빴고 순서는 몰라도 따라할 정도의 시간 여유가 생기니 어찌나 몸이 굳었는지 마음대로 동작이 되지 않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사범님은 무리하지 말고 자신의 몸에 맞게끔 하라고 하셨지만 잘하는 옆 사람 보면서 하니 욕심이라는 것이 생겨 손끝이 아픈 적도 있었고 허벅지 안쪽 인대가 아픈 적도 있었다. 그렇게 3개월 정도가 지나니 어느 정도 몸이 풀어짐을 느꼈다. 하고나면 힘이 들었었는데 그런 증상이 없어지고 몸이 가뿐해 지는 것 같았다.
호흡은 맘대로 되질 않았다. 누워하다 앉아서, 서서 하면 잘 되지 않았고, 행공동작을 취하면 더 안 되었다. 그러나 수련시간만큼은 늘 떠서 둥둥거리는 내 마음도 수련을 할수록 어느 정도 가라앉아 편안하고 느긋해졌으며 오로지 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단전자리에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고 움츠린 가슴이 서서히 펴짐을 느꼈다. 또 내 자신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지고 이전보다 더 존중하는 마음이 들었다.
중기 전편 수련일이 100일 가까워서는 몸도 많이 풀어졌는지 어느 정도 행공 동작도 잡히고 행공이 재미있었다. 그 즈음 입단행공1식의 재미도 조금 느꼈다. 하다보니 동작에 맞게 호흡이 되어지고 찌릿찌릿 기운이 조금씩 느껴졌다. 기신법의 동작들은 길을 익혔고 무게 중심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두세 번 명문자리의 뜨거움도 느꼈다. 어느 땐 그 뜨거움이 내가 숨을 들이마실 땐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가 내쉴 땐 다시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잘못 느낀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땐 욕심이 별로 없었다. 매일 수련을 못하고 빠지는 날도 많았지만 그저 그 시간만큼이라도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하고 편안히 나를 놓아주려고 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중기 후편의 수련은 한마디로 힘들었다. 행공 동작 자체도 어려웠고 잡생각도 많이 났고 무엇보다 욕심도 생겼고... 또 나의 주변 생활도 그리 안정적이지 못 했다. 걱정거리, 고민거리가 많아지고 깊어갈수록 그것을 떨쳐 버리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져갔고 그럴수록 더 마음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더 붕 떠서 이런 저런 생각과 고민에 끌려 다녔다. 그러던 중 이사를 가게 되었고 수련원도 옮기게 되었다. 이사한 곳에서의 새로운 적응과 새로운 수련원의 적응으로 또 그렇게 어영부영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마음은 잡을 수가 없었다. 나의 신경은 몸보다는 마음으로 쏠렸다. 특별히 몸이 많이 안 좋았던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그 때의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나를 다스리고 싶은 마음이 커 몸의 건강보다는 마음을 내리고 나를 비우는 마음수련이 간절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마음 수련에 대한 나의 욕심은 오히려 수련에 더 방해가 되었다. 사범님은 말씀하셨다. 몸은 욕심의 근본이라 몸 수련을 먼저 하고 - 물론 이 과정에서 마음 수련도 자연스럽게 같이 된다 하셨다 - 마음 수련을 해야 한다고. 100%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사범님을 믿고 따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나에게 좋은 기회가 왔다.
“ 공부하고 오시지요 ”
사범님이 말씀하셨다. 내키지 않아도 때가 되었으니 건곤으로 승단하고 생활강사 교육을 다녀오라는 얘기셨다. 난 그냥 사범님의 그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여 중기후편 수련의 아쉬움을 남긴 채 승단을 했고 교육에 참여했다. 그것이 생활강사라는 지도자 과정 교육인지도 잘 모르고 국선도가 뭔지, 수련에 도움이 되겠거니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교육원 구석구석을 채우던 교육생들의 그 열기와 에너지, 지금도 생생하다. 교육을 받는 2박3일 동안 나는 온몸으로 국선도의 기운을 느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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