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이 없어졌어요 2002.11.28
본문
작성자 : 김상민
나는 1989년 8월 직장에서 1년을 기한으로 日本 東京都 쿠니다치(國立)市에 있는 히도쯔바시(一橋)대학원에 연구생으로 연수를 가게 되었다. 이전에 1983년 4월부터 1985년 10월까지 약 2년 6개월 우리은행 동경사무소에 근무한 적이 있어 일본말은 어느 정도 할 줄 알아 별 걱정은 없었지만 내가 히도쯔바시(一橋)대학원에서 해야 하는 공부가 대학에서 전공한 것(法學)이 아니라서 다소 부담스러운 점 및 가족과 함께 가지 못하고 혼자 가서 생활해야 한다는 점으로 일본으로 가는 나의 발걸음은 가볍지는 않았다.
과연 그랬다. 학교근처에 방을 구해 자취를 해가며 수업도 듣고 수업이 없는 시간은 연구실에서 공부도 하고 발표준비도 해야 하는 학교생활은 고달프기만 했다. 기본적 실력이 부족한 데다 대학을 졸업한 지도 15년이나 지나 이제 나이도 마흔살이나 된 내가 젊은 학생들과 같이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래도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였다. 밥해 먹는 시간도 아까워 학교근처 식당에서 매식하면서 아침 6시에 집을 나와 학교에서 수업 듣고, 저녁 11시반까지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로 내머리는 흰머리가 늘어나고 쌓이는 스트레스로 6개월 후 나는 불면증에 걸리고 말았다. 좀 휴식을 취했어야 했는데 중도에 관두고 돌아 온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어 학교 부속보건소를 찾아 상담하고 신경안정제의 힘을 빌어 6개월을 가까스로 더 버티어 이윽고 연수를 마치고 1990년 8월에 귀국하게 되었다. 그러나 돌아온 후로도 불면증은 낫지 않아 나는 신경안정제 없이는 한숨도 잘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2주일마다 신경정신과 병원(연희동소재 연세신경정신과병원; 김 병후 원장)에서 진찰을 받고 약을 받아오는 생활이 어느덧 5년이나 계속되었다.
단전호흡을 시작하다
1995년 4월 10일 우리 직장에서 직원 건강복지를 위해 직장 내에 단전호흡 수련장을 설치하고 국선도법연구회의 단전호흡 사범님을 초빙하여 관심 있는 직원들로 하여금 수련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전에 불면증에 단전호흡이 좋다는 말을 들어온 나는 시간을 내어 외부 수련장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직장 내에 수련장이 생겨 일과후 비로서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진목법사님께서 지도해 주셨다. 앞에서 시범해 보이는 기혈유통법을 따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굳어진 몸이 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가부좌는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굳어 있던 몸도 서서히 풀리고 동작도 잘 되기 시작했다. 호흡도 입문호흡단계를 지나 중기단법에 들어가자 5초 흡하고 5초 호하는 것이 처음에는 숨이 차고 힘이 들었으나 점점 자연스럽게 호흡이 되기 시작했다.
불면증이 낫다.
중기단법 전편을 시작한 지 3개월여가 지날 즈음 일과 후 행공 도중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휴심법(休心法)의 좌법(左法) 행공을 하는 중 단전에 대고 있던 오른쪽 손바닥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전기가 통하듯이 잠시 찌릿하였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다음날은 휴심법(休心法)의 우법(右法) 행공을 하는 도중 단전에 대고 있던 왼손바닥이 어제와 같이 전기가 통하듯이 찌릿하였다. 그러고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런 현상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단전호흡을 한 후로는 그동안 아팠던 두통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머리속이 시원해지고 몸도 가벼워지는 것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전호흡을 하는 중에도 저녁에 잠을 자기 위해서는 아직도 신경안정제를 매일 복용하여야 했다. 복용하는 약의 분량은 다소 많이 줄었다. 단전호흡을 시작한지 어느새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안 되었던 신경안정제 없이 잠들기가 어느날 가능하게 되었다. 6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약에 의존해야만 잠을 잘 수 있었는데 마치 거짓말처럼 불면증이 나았던 것이다. 불면증이 얼마나 괴로운 병인지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 이후 나는 정상적으로 잠에 들게 되었다.
단전호흡, 거를 수 없는 하루 일과가 되다.
단전호흡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일 년이 지났다. 직장생활에서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약속이 있는 저녁은 불가피하게 수련에 빠지기도 하였다. 일주일에 2 ~3일은 수련에 빠진 것 같았다. 그러는 가운데도 이제껏 안 되던 결가부좌도 되게 되었고 기신법에서의 축법도 가능하게 되었다. 수련을 마치고 귀가하는 날은 업무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가시어 머리가 상쾌해지고 발걸음도 가벼워 마치 몸이 공중에 뜬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다음날 출근하면 하루 일과가 어서 끝나 수련시간이 오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일상사의 모든 근심 걱정과 고민을 잊고 혼자만의 명상에 침잠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1997년 1월부터 건곤단법행공을 시작했다. 사범님께서 노란띠를 주셨다. 건곤단법부터는 호흡시간이 두배로 늘고 기를 돌리는 행공도 있어 처음에는 힘이 들었지만 점점 익숙해지게 되었다. 전에는 숨이 많이 찼는데 별로 숨이 가쁘지도 않게 되었다. 건곤단법부터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련에 임하게 되었다. 불가피하게 저녁에 약속이 있는 날은 점심시간에 수련을 하였다. 건곤단법에 익숙해지자 등산을 하는 것이 쉬워졌다
1997년 11월 어느날 저녁에 잠을 자다 깜짝 놀라 깨어났다. 가는 물줄기 같은 뜨거운 열기가 독맥을 타고 목 뒤 가까이까지 올라가는 것을 느껴 깨어난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자다가 깨어났다. 이번에는 뜨거운 열기가 이마까지 올라가는 것 같았다.
1997년 12월부터 원기단법행공에 들어 갔다. 빨간 띠를 두르게 되었다. 원기단법에서는 호흡법도 달라지고 한동작의 행공시간이 두 배로 늘고 행공동작도 어려운 동작이 많아 행공하기가 쉽지 않았다. 1번에서 6번까지는 두 달 단위로 수련을 하였다. 도중 사범님의 지도에 따라 원기행공을 잠시 멈추고 원기호흡법에 집중하기도 하였다. 1998년 7월 이후 7번째 행공부터는 한 달 단위로 수련을 계속하였다.
생활강사 연수를 받고
1999년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3일간 충남 계룡산 부근에 있는 신협연수원에서 국선도 생활강사 연수에 참가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수사과정과 사범과정도 합쳐 100명이 좀 넘는 수련생들이 모여 모두 진지한 자세로 연수를 받았다. 그 동안 직장에서만 수련을 하는 관계로 이론 교육은 별로 받아보지 못한 나로서는 국선도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국선도의 목적, 국선도의 유래, 국선도의 특징, 호흡법의 개요와 입문호흡, 중기단법 및 건곤단법의 원리 등 도종사님께서 직접 강의해 주시고 실제 행공시범도 보여주시어 그동안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동작을 고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 누구도 속박을 주지 않는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절제를 잃지 않고 연수에 임하고 있는 수련생들의 자세는 역시 국선도 단전호흡으로 인격수양이 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박3일 연수과정이 끝나 도종사님으로부터 수료장을 받는 순간 벌써 연수가 끝나는 아쉬움에 돌아오기가 서운할 정도였다.
수사과정 연수를 받으며
2000년 4월 9일 그리고 15일, 16일 종로 3가 백궁빌딩에 있는 국선도 본원에서 수사과정 연수를 받게 되었다. 도종사님을 비롯하여 여러 사범선생님들께서 너무도 진지하게 그리고 자상하게 가르쳐 주시고 설명해 주시는 덕분에 그동안 잘못 알고 해오던 여러 동작들을 바르게 고칠 수 있게 되었으며 새롭게 국선도 외공법에 접할 귀중한 기회도 갖게 되었다.
국선도의 발전을 기원하며
국선도에 입문하게 된 것은 나로서는 참으로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국선도 단전호흡은 건강은 물론 건전한 사고를 갖게 해주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국선도에 입문하여 건강은 물론 건전한 마음을 가져 이기적 경쟁주의에 너무 치우쳐 오로지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면서 남들의 어려움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오늘날 우리의 옛 조상들이 그랬듯이 남도 생각해 줄줄 아는 넉넉한 마음들을 가져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잘 살수 있는 사회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나의 소박한 바람이다.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 국선도가 널리 퍼져 국선도가 우리 국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정신과 육체의 건강의 원천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과연 그랬다. 학교근처에 방을 구해 자취를 해가며 수업도 듣고 수업이 없는 시간은 연구실에서 공부도 하고 발표준비도 해야 하는 학교생활은 고달프기만 했다. 기본적 실력이 부족한 데다 대학을 졸업한 지도 15년이나 지나 이제 나이도 마흔살이나 된 내가 젊은 학생들과 같이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래도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였다. 밥해 먹는 시간도 아까워 학교근처 식당에서 매식하면서 아침 6시에 집을 나와 학교에서 수업 듣고, 저녁 11시반까지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로 내머리는 흰머리가 늘어나고 쌓이는 스트레스로 6개월 후 나는 불면증에 걸리고 말았다. 좀 휴식을 취했어야 했는데 중도에 관두고 돌아 온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어 학교 부속보건소를 찾아 상담하고 신경안정제의 힘을 빌어 6개월을 가까스로 더 버티어 이윽고 연수를 마치고 1990년 8월에 귀국하게 되었다. 그러나 돌아온 후로도 불면증은 낫지 않아 나는 신경안정제 없이는 한숨도 잘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2주일마다 신경정신과 병원(연희동소재 연세신경정신과병원; 김 병후 원장)에서 진찰을 받고 약을 받아오는 생활이 어느덧 5년이나 계속되었다.
단전호흡을 시작하다
1995년 4월 10일 우리 직장에서 직원 건강복지를 위해 직장 내에 단전호흡 수련장을 설치하고 국선도법연구회의 단전호흡 사범님을 초빙하여 관심 있는 직원들로 하여금 수련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전에 불면증에 단전호흡이 좋다는 말을 들어온 나는 시간을 내어 외부 수련장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직장 내에 수련장이 생겨 일과후 비로서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진목법사님께서 지도해 주셨다. 앞에서 시범해 보이는 기혈유통법을 따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굳어진 몸이 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가부좌는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굳어 있던 몸도 서서히 풀리고 동작도 잘 되기 시작했다. 호흡도 입문호흡단계를 지나 중기단법에 들어가자 5초 흡하고 5초 호하는 것이 처음에는 숨이 차고 힘이 들었으나 점점 자연스럽게 호흡이 되기 시작했다.
불면증이 낫다.
중기단법 전편을 시작한 지 3개월여가 지날 즈음 일과 후 행공 도중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휴심법(休心法)의 좌법(左法) 행공을 하는 중 단전에 대고 있던 오른쪽 손바닥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전기가 통하듯이 잠시 찌릿하였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다음날은 휴심법(休心法)의 우법(右法) 행공을 하는 도중 단전에 대고 있던 왼손바닥이 어제와 같이 전기가 통하듯이 찌릿하였다. 그러고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런 현상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단전호흡을 한 후로는 그동안 아팠던 두통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머리속이 시원해지고 몸도 가벼워지는 것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전호흡을 하는 중에도 저녁에 잠을 자기 위해서는 아직도 신경안정제를 매일 복용하여야 했다. 복용하는 약의 분량은 다소 많이 줄었다. 단전호흡을 시작한지 어느새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안 되었던 신경안정제 없이 잠들기가 어느날 가능하게 되었다. 6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약에 의존해야만 잠을 잘 수 있었는데 마치 거짓말처럼 불면증이 나았던 것이다. 불면증이 얼마나 괴로운 병인지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 이후 나는 정상적으로 잠에 들게 되었다.
단전호흡, 거를 수 없는 하루 일과가 되다.
단전호흡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일 년이 지났다. 직장생활에서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약속이 있는 저녁은 불가피하게 수련에 빠지기도 하였다. 일주일에 2 ~3일은 수련에 빠진 것 같았다. 그러는 가운데도 이제껏 안 되던 결가부좌도 되게 되었고 기신법에서의 축법도 가능하게 되었다. 수련을 마치고 귀가하는 날은 업무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가시어 머리가 상쾌해지고 발걸음도 가벼워 마치 몸이 공중에 뜬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다음날 출근하면 하루 일과가 어서 끝나 수련시간이 오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일상사의 모든 근심 걱정과 고민을 잊고 혼자만의 명상에 침잠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1997년 1월부터 건곤단법행공을 시작했다. 사범님께서 노란띠를 주셨다. 건곤단법부터는 호흡시간이 두배로 늘고 기를 돌리는 행공도 있어 처음에는 힘이 들었지만 점점 익숙해지게 되었다. 전에는 숨이 많이 찼는데 별로 숨이 가쁘지도 않게 되었다. 건곤단법부터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련에 임하게 되었다. 불가피하게 저녁에 약속이 있는 날은 점심시간에 수련을 하였다. 건곤단법에 익숙해지자 등산을 하는 것이 쉬워졌다
1997년 11월 어느날 저녁에 잠을 자다 깜짝 놀라 깨어났다. 가는 물줄기 같은 뜨거운 열기가 독맥을 타고 목 뒤 가까이까지 올라가는 것을 느껴 깨어난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자다가 깨어났다. 이번에는 뜨거운 열기가 이마까지 올라가는 것 같았다.
1997년 12월부터 원기단법행공에 들어 갔다. 빨간 띠를 두르게 되었다. 원기단법에서는 호흡법도 달라지고 한동작의 행공시간이 두 배로 늘고 행공동작도 어려운 동작이 많아 행공하기가 쉽지 않았다. 1번에서 6번까지는 두 달 단위로 수련을 하였다. 도중 사범님의 지도에 따라 원기행공을 잠시 멈추고 원기호흡법에 집중하기도 하였다. 1998년 7월 이후 7번째 행공부터는 한 달 단위로 수련을 계속하였다.
생활강사 연수를 받고
1999년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3일간 충남 계룡산 부근에 있는 신협연수원에서 국선도 생활강사 연수에 참가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수사과정과 사범과정도 합쳐 100명이 좀 넘는 수련생들이 모여 모두 진지한 자세로 연수를 받았다. 그 동안 직장에서만 수련을 하는 관계로 이론 교육은 별로 받아보지 못한 나로서는 국선도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국선도의 목적, 국선도의 유래, 국선도의 특징, 호흡법의 개요와 입문호흡, 중기단법 및 건곤단법의 원리 등 도종사님께서 직접 강의해 주시고 실제 행공시범도 보여주시어 그동안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동작을 고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 누구도 속박을 주지 않는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절제를 잃지 않고 연수에 임하고 있는 수련생들의 자세는 역시 국선도 단전호흡으로 인격수양이 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박3일 연수과정이 끝나 도종사님으로부터 수료장을 받는 순간 벌써 연수가 끝나는 아쉬움에 돌아오기가 서운할 정도였다.
수사과정 연수를 받으며
2000년 4월 9일 그리고 15일, 16일 종로 3가 백궁빌딩에 있는 국선도 본원에서 수사과정 연수를 받게 되었다. 도종사님을 비롯하여 여러 사범선생님들께서 너무도 진지하게 그리고 자상하게 가르쳐 주시고 설명해 주시는 덕분에 그동안 잘못 알고 해오던 여러 동작들을 바르게 고칠 수 있게 되었으며 새롭게 국선도 외공법에 접할 귀중한 기회도 갖게 되었다.
국선도의 발전을 기원하며
국선도에 입문하게 된 것은 나로서는 참으로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국선도 단전호흡은 건강은 물론 건전한 사고를 갖게 해주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국선도에 입문하여 건강은 물론 건전한 마음을 가져 이기적 경쟁주의에 너무 치우쳐 오로지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면서 남들의 어려움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오늘날 우리의 옛 조상들이 그랬듯이 남도 생각해 줄줄 아는 넉넉한 마음들을 가져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잘 살수 있는 사회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나의 소박한 바람이다.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 국선도가 널리 퍼져 국선도가 우리 국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정신과 육체의 건강의 원천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